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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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편집]

1985년 봄,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학생 권인숙은 경기도 부천시 '주식회사 성신'이라는 가스배출기 제조업체에 취업했다.[1] 그 시절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기는커녕 그런 것에 대한 지식조차 없어 열심히 일하고도 착취만 당하며 살았다. 이에 명문대 학생들이 이들에게 법적 권리와 사회 모순을 일깨워주고자 산업 현장에 위장취업하는 일이 흔했고, 권인숙도 그런 부류였다.

전개[편집]

1년여 후인 1986년 6월 4일 권인숙은 위장취업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위조했다는 혐의로 부천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그리고 6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쳐 담당 형사 문귀동에게 성고문을 당했다. [2]

7월 3일 권인숙은 문귀동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바로 그날 권인숙은 공문서변조 및 동행사, 사문서변조 및 동행사, 절도, 문서파손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고, 다음날 문귀동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3]

그 전부터 인천 5.3 사태를 수사하면서 여자 구속자에게 성적 고문이 행해지고 있다는 말이 떠돌았고, 구속자들로부터 실제로 당했다는 이야기도 듣기도 했으나, 구속자들이 수치심 때문에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를 꺼려했다. 그런데 권양의 경우는 처음부터 달랐다. 직접 만나서 듣게 된 내용도 엄청났지만, 꼭 정확한 사실을 외부에 알려 다시는 자신과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는 권양의 확고한 자세가 나를 놀라게 했다.

- 변호사 이상수[4]

정권의 역공[편집]

7월 16일 검찰은 성모욕 행위가 없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권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운동권이 마침내 성까지 혁명의 도구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언론에 보도지침을 내려 '부천서 성폭행 사건'이 아닌 '부천서 사건'이라 보도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미국 국무성의 '부천 성고문 사건에 유감'이라는 논평 역시 보도하지 못하도록 했다.[5]

매서운 언론[편집]

언론 역시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조선일보는 86년 7월 17일자 사회면 머릿기사에서 <운동권, 공권력 무력화 책동>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또한 <'부천서 사건' 공안당국 분석>의 기사에서도 "급진세력의 투쟁 전략 전술 일환. 혁명 위해 성까지 도구화한 사건"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18일 사설에서는 "이 시점에서 수사권 밖의 사람이 진실이 어떠했는가를 가릴 능력도 없고 그럴 입장도 못 된다"고 주장했다.[6]

언론사의 사회부장 이상 간부들은 7월 16일 검찰의 수사발표를 전후해 문공부 고위관료의 인솔 아래 부산, 도고온천 등에 놀러가 이 사건 보도에 대한 협조의 대가로 정부당국이 준 거액의 촌지를 받아 챙겼다. 또한 법원출입 기자들도 검찰발표 당일 법무부 고위당국자로부터 거액의 촌지가 든 두툼한 봉투를 나누어 받았다.[7]

결과[편집]

87년 4월, 문귀동이 아닌 피해자 권인숙이 1년 6개월의 판결을 확정받았다. [8]

6월 항쟁이 있자 정부는 권인숙을 가석방시켰고, 88년 2월 대법원은 변호인단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89년이 되어서야 문귀동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되었다.[9]

여담[편집]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문부식은 권인숙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동료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부산 치안본부 대공분실 조사실로 끌려간 문부식의 여자 동료들은 건장한 체구의 남자 수사관들에 의해 알몸이 되어 욕조에 거꾸로 처박혔었다. "너 몇 번 해봤니? 너희들 자취방 같은 데 모여서 그룹 섹스 자주 했지?"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채 겁에 질려서 팬티에 방뇨한 것을 돌뵬 겨를도 없는 나이 어린 여학생들의 귀에 대고 그들은 그렇게 속삭였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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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사태 김영삼 질산 테러 경부고속도로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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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 사건 부마 민주화 운동 김영삼 의원 제명 사건
YH 무역 사건 10.26 사태 12.12 쿠데타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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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국풍 81 아웅산 묘소 테러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건국대 사건 6월 항쟁
대한항공 858 폭파 사건 서울 올림픽 1989년 공안정국
1990년대
3당 합당 1990년 KBS 사태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 -
중부지역당 사건 역사 바로 세우기 연세대 사태
2000년대
2010년대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대통령 탄핵
  1. 강준만. (2003).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권, p.36~45
  2. 강준만. (2003).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권, p.36~45
  3. 강준만. (2003).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권, p.36~45
  4. 월간조선. (1993). 한국현대사 119대 사건, p.318~319.
  5. 강준만. (2003).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권, p.36~45
  6. 강준만. (2003).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권, p.36~45
  7. 김상웅. (1995). 곡필로 본 해방 50년, p.381~384
  8. 강준만. (2003).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권, p.36~45
  9. 강준만. (2003).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권, p.36~45
  10. 문부식. (2003).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