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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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편집]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 후보 박근혜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가정보원이 댓글 부대를 운용해왔다. 관련자들은 처음에 “댓글 단 적 없다”고 했다가 “국가안보-대북심리전 위한 활동일 뿐”이라 말을 바꿨고, 나중에 가서는 “이명박이 직접 지시하진 않았다”라며 또 말을 바꾼다. 자세한 것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또는 원세훈 참고.

국정원 특활비 상납[편집]

국가정보원이 이명박의 청와대에 특별활동비를 상납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MB측은 "허무맹랑한 소설, 퇴행적 정치공작"이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청와대에서 ‘청와대 기념품 비용이 모자라다’라며 돈을 요구했다”고 실토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었던 김희중이 "국정원에서 받은 특활비 1억 원을 이명박에게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또한 국정원 기조실장 김주성은 자신이 이명박에게 '국정원 특활비 상납이 문제될 수 있다'고 독대보고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명박 측이 "국정원 기조실장이 대통령과 독대할 위치가 아니지 않느냐"고 부인하자, 이번에는 비서실장이었던 류우익이 "내가 그 독대 자리를 주선했다"고 폭로했다. MB가 측근의 진술을 부인했더니 또 다른 측근이 사실을 확인해 준 격이다.#

한편, 김희중의 폭로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김희중은 이명박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관을 지내고 서울시장 시절 의전 비서관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임기 내내 지내 MB의 분신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2012년 김희중은 모 저축은행 관련 비리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는데, 이때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부인이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다.# 그런데 이명박은 상에 나타나지도 않고 꽃도 보내지 않을 정도로 김희중을 모른 체 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여러 번 대통령 면담 요청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아 서운함이 컸다고.#

이번에 특활비 내역을 폭로하면서 김희중은 [[정두언]에게 "더이상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취재진에게도 "내가 착복한 것은 없다" "나도 살아야겠다"란 문자를 보내며, 이명박과 영원한 결별을 통보했다.#

다스 소유주 논란[편집]

그 회사가 제 회사 같으면 두 분이 악착스럽게 월급도 받아 가고 뭐도 빼갔을 겁니다.
- 2007년 7월, 한나라당 예비후보 청문회#
음해성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많은 것을 지적받고도 제가 건재한 것을 보면 저는 삶을 제대로 살았다.
- 2007년 11월, 관훈클럽 토론회#
기자 : ‘다스는 누구 거냐’ 국민들이 궁금해한다.

이명박 : 그건 나한테 물어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 2017년 12월#

말이 게속 바뀐다...

MB의 최측근이었던 새누리당 전 의원 정두언에 따르면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에 ‘현대그룹 정씨 일가의 권유로 내가 다스를 설립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다녔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스 소유를 부인하면 그 8조짜리 회사가 이상은에게 넘어가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 정두언이 MB를 ‘정말 돈에 대해서는 집착이 강하신 분’이라 표현한 것은 덤.#

다스 전 사장 김성우는 "다스는 이명박 지시로 만들어졌으며, 과거 특검 당시 했던 증언이 거짓말이었다"는 자수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한편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는 다스 실소유주 논란에 "이 전 대통령이 대처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방송 장악[편집]

  • 광우병 보도를 한 MBC PD 수첩 제작진과 파업을 벌이는 YTN 노조원들을 체포했는데, 이에 대해 영국 <The Economist>지는 북한 김정일 정권이 개성공단 남한 근로자를 구금한 것에 빗대었다.#

경제 대통령?[편집]

  • 이명박은 2008년 말 한국무역협회장과 환담하던 중 “내년(2009년) 상반기가 최악의 상태고, 그 다음에 2~3% 마이너스 할 거야. 하반기에는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다음’이 언제란 건지는 분명치 않지만 “지금 주식 사면 1년 뒤에는 부자 된다”던 소리와는 딴판이다. 대통령실장 정정길도 비관적이다. “상황이 매우 엄중하고 내년 3~4월이 되면 더 어려울 것이다. 내년 2월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게 되면 국정운영이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여기에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는 최근 내년 우리 경제가 2%대 성장에 머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떡하든 4% 성장에는 맞춰보겠다고 하던 정부가 다시 말을 바꾼 셈이다. 7% 성장이야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고 하면 그만일 수 있다. 임기 내 비전이란 설명도 그럴듯하다. 그러나 2% 성장이라니! 여기저기서 마이너스 성장 얘기도 나오니 놀랄 일은 아니다. 사정이 이렇듯 나빠진 데는 세계적 경제위기 탓이 크다고 하니 ‘리만 브라더스(이명박-강만수)’만 닦달할 일도 아니다.#

소통 부족[편집]

  • 취임 후 3년 동안 기자회견이라고 이름 붙인 행사를 20여 차례 가졌지만 정상회담 정리 회견처럼 의례적인 것을 빼면 언론과 일문일답을 한 경우가 네댓 번밖에 안 된다. 그나마 그것도 대부분 'G20정상회의 보고'처럼 정부가 자랑하고 싶은 항목으로 아예 주제를 한정했다. 그 선을 벗어나면 질문도 받지 않았고, 물어도 듣지 않은 걸로 해버렸다.#
  • 2011년 새해 벽두에는 기자회견을 대신해 신년 방송좌담회를 가졌는데, 토론자 두 명이 질문하면 대통령이 답변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마저 사설에서 "보다 보니 별 희한한 국민 소통을 다 보겠다.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에겐 시간·장소·형식을 가리지 말고 언론과의 회견을 통해 국민과 소통할 의무가 있다. 언론과 만나는 걸 무슨 서비스인 양 생각하는 건 대단한 착각이다. 그건 서비스가 아니라 의무"라며 비판했다.#
  • 반면 김대중 노무현은 재임기간 해마다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고 'TV 국민과의 대화'도 여러 번 진행했다. 두 사람이 각각 임기 5년 동안 기자회견 이름으로 가진 행사가 150여 회였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만 해도 2010년 27차례나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막말[편집]

서강대 교수 손호철은 이명박을 '시한폭탄'이라 부르고 "노무현은 특유의 경박함으로 입만 열면 사고를 쳐오고 있는데, 이명박의 입도 노무현 못지 않다"며 비판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마저 한숨을 내쉬며 "노무현이 말 때문에 욕먹는 걸 4년간 보고도 왜 저러는지"라며 개탄했다.[1]

  • "내가 하면 정부 예산에서 매년 20조원은 남길 수 있을 것."[2]
  • (서울시장 선거에서) "강금실이 당선되면 놀기 좋아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좋아할 것."[3]
  • (박근혜를 겨냥하며)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4]
  • "70~80년대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5]

기타[편집]

노무현의 정무특보였던 이강철은 2006년 서울 강남에 횟집을 차렸다. 2008년 이후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손님들이 "내 돈내고 식당에서 밥먹었을 뿐인데 검찰에서 전화가 오고 중수부에 끌려갔다"는 불평을 쏟아내며 발길을 돌렸다. 횟집에서 카드나 수표로 10만원 이상 결제한 사람들이 중수부에 불려갔다고 한다.#
  1. 강준만. (2011).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4권, p.251~253
  2. 강준만. (2011).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4권, p.251
  3. 강준만. (2011).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4권, p.252
  4. 이에 박근혜는 "그럼 군대 안 갔다온 남자는 군 통수권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냐"라고 응수했다. 강준만. (2011).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4권, p.248
  5. 강준만. (2011).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4권, p.252